술주정 日常의 溢想

>외대. 2008. 8. 19 

 자정이 되었다. 만취한 나의 발걸음이 비틀비틀 세미나실로 향했다. 오늘 나는 약했다. 나는 이러한 내가 싫다. 검열하는 나는 누구의 손에 의해 제조된 것일까? 나는 취했으므로 정신이 없다. 무엇인가를 쓰고 싶었기에 뭐든 쓰고 있다. 나는 이것이 싫다. 싫어도 나는 쓴다. 검열의 장막을 뚫고 뾰족한 것들이 떠오른다. 그 뾰족한 검은 것들이 밉다. 그것들을 긍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그러하다. 나는 나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것이다. 나는 나를 떠날 수도 없다. 아, 이 모순을 감당하기에, 나의 생이 너무 버겁다. 위로 따위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진작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포기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내가, 나를 포기할 수 없기에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긍정할 수 없으며, 내가 증오스럽고 또 증오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외줄의 한 복판에 외발로 서 있다. 이런 나를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 섣부른 구원의 시도가 나를 땅바닥으로 힘껏 내동댕이 치지는 않을는지? 

 너는 외롭도록 선고받았다. 너는 계속 그렇게 외로워해라. 그리고, 외롭지 않은자를 경계하라. 너의 외로움이 너를 죽이지 않도록.

2008. 9. 10
粗髥散筆.


저물녘 햇살이 그리 정겨워... 日常의 溢想

>외학연. 2008. 9. 8
 
 창가를 비스듬히 비치는 오렌지색 햇살이 유난히 정겨운 오후이다. 고된 발표수업을 마친 내 몸뚱아리가 안락의자에 앉아서 마냥 태평하기만 하다. 발표를 끝낸 후 유난히 악명 높은 H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찬사가 민망하여 얼굴이 불그레했다. 6층으로 올라와 산사의 풍경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어느 젊은이의 노래를 틀어놓고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자 햇살이 보였다. 책상 위로 켜켜이 쌓인 책, 그 위를 그 햇살이 부드러운 가슴으로 보듬고 있다.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일순 멍했다. 햇살과 음악과 노곤한 뼈마디, 축 처진 몸뚱아리가 나를 외롭게 하였다. 그 햇살의 가슴에 나도 안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품속에서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나는 몇 년 전 어느 겨울, 나를 보듬으며 내 등을 쓸던 그녀의 손길을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의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던 그녀의 아파트 앞이었다. 나는 그녀의 품속에서 집에 돌아갈 일이 조금도 염려되지 않았다. 얼마나 따뜻했던가? 낡은 점퍼 위로 전해진 그녀의 체온이, 차디찬 내 살과 영혼에, 그 얼마나 따뜻했던가? 

2008. 9. 8
粗髥散筆.
 


배가 고픈 정오에 쓴 한 꼭지 사랑담 斷想과 丹傷

 '좋아한다'는 말 만큼 쓰잘데 없는 말이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새삼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일이 아니요,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왜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일까? 어떠한 욕망이 그의 심장에 입술을 달아 주었던가? 누군가가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낼 때, 그는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말을 듣기 위해, 그 말을 유도하고, 일궈내고, 혹은 강제하기까지 하는 것이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때 발생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해 진작부터 의심을 품고 다녔다. 그리고 나서는,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속되게 여겨졌고, 나는 여전히 나 자신조차도 온전히 좋아하지 못하고 있음을 걱정하였고, 더러는 분개하였다. 

 얼마 전까지 그녀에게 말했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 너무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녀는 내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는 늘 난감해 했고, 겨우 몇몇 한글 자모를 끼워맞춰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입 밖에 흘려 보냈다. 그래도 그녀는 거듭 의심했다. 그럴만 했다. 조립된 낱말 위에는 빈틈이 보였다. 나는 '사랑'을 완전하게 조립할 수 없었다. 나의 사랑은 이미 몇 년 전 파산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내 위에 새로운 내가 엎드려 있을 뿐,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 섞이지 않았고, 화학반응은 커녕, 융해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 아래 깔려 있는 나는 그 위에 엎드려 있는 나의 혓바닥으로 자기의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사랑하지 못할 일이 두려워. 그러나 다시 사랑할 일이 또한 두려워. 그렇게 나는 엉거주춤하다. 그녀는 그런 내가 미워 미국으로 날아갔다. 중대장이 바뀐 날, 부하들과 열심히 공을 찼고, 벗어놓은 바지 속에 핸드폰이 문자를 받고 울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는 그것을 다시 보기 싫어 얼른 지워버렸다. 그 시절 산야에는 진달래가 무더기로 시시덕거리곤 했다. 나는 그것들을 무더기로 삽으로 날라 부대 주위에 심기도 했다. 
 
2008. 9. 7
粗髥散筆.


이인성 日常의 溢想

 혜화역에서 혜화동 로터리로 걷던 중에, 빨간 남방을 입고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한 그를 보았다. 당연히도 나의 존재 따위에 관심이 없었을 그의 존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나는 유유하게 걸어서 혜화역 쪽으로 향하는 그를 뒤돌아 보았다.
 초가을 태양이 까끌까끌한 주말의 이른 오후, 내 서가에는 그의 소설 너댓 권이 나란하게 기대어 서 있다.

2008. 9. 6
粗髥散筆.

한 밤 중의 雜想 斷想과 丹傷

1. 한 가지 사태나 사물을 의식의 면전에 두고, 그것들에 대해 진득하게 사유의 고리를 맺고 또 맺는 일이 근자에 퍽 절실하게 여겨진다. 내 앞에 무엇이 있고, 또 무엇 앞에 내가 있는가? 나는 그것과, 또 그것은 나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그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상호간에 어떠한 의미를 배태하였고, 또 어떠한 의미의 상실과정을 거쳐 결국 어느 시점에서 종말을 맞게 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일종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 상상력으로써 나는 똥무더기 속에서도 종종 우주를 쳐다볼 수 있게 된다. 불가의 '연기(緣起)'라는 것이 그것이다. 삼라만상에 '연(緣)'의 손바닥 위 아닌 것이 없을 터인데, 우리의 의식은 늘 주체라는 애매모호한 주어 안에 함몰되어 있기 마련이므로, '나'와 '타(他)'는 모순을 만들어 내고 또 그 모순을 파괴하는 영원회귀를 지긋지긋하게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담배갑이 오늘따라 나의 기분을 돋우는 소이연이 무엇일까? 정확히 일곱 개비의 담배가 숨어있는 파란 색 담배갑을 쳐다보고 또 그 속을 들여다보면서, 분명 누군가의 손을 거쳤을 이것이 언제 어디서 내 손에 들어왔는가, 정확히 생각해낼 수 없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는 '한 대를 피울까 말까?' 장고를 거듭하다가, 담배를 많이 피운 날 새벽에 비몽사몽간 느끼곤 하는 목구멍의 이물감을 떠올렸다. 담배갑에는 라이터도 들어있다. 담배와 라이터는 무에 지친 듯 서로의 공간을 얌전히 차지하고 있다. 한 개비를 물었다. 필터를 앞니로 살짝 깨물었다. 입 속에 침이 고인다. 얼른 담배 끝에 불을 붙여야겠다. 무료했던 한 개비의 담배가 서로 불화(不和)했던 라이터의 불꽃에 자기 몸을 사른다. 그렇게 담배 한 개비가 처음으로 내 자취방 안에서 연소되기 시작했다. 필터 끄트머리의 한 가운데가 거뭇거뭇하다. 그 거뭇거뭇한 것은 내 허파꽈리에도 달라붙었을 것이다. 예전에 사두었던 종이컵을 찬장에서 끄집어 냈다. 나의 타액과 담뱃재로 더럽혀진 하얀 육체가 아름답다. 내 검은 허파도 저렇듯 아름다울까? 종이컵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하나의 우주가 가볍게 출렁거린다.

2008. 8. 29
粗髥散筆.


전자(電子)를 움직이는 힘 斷想과 丹傷

 전압의 우악스런 강요에 못 이겨, 부지기수의 전자들이 민족의 이동을 시작한다. 거미줄처럼, 혹은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힌 굵고 가는 도체들을 따라가다 온갖 종류의 저항을 받으면, 여기서는 밥을 짓고, 저기서는 불을 밝히며, 빨래를 하거나 얼음을 얼린다.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그들, 수억 개의 쌍둥이들은 힘을 피해서 여기까지 도망쳐 왔을 뿐인데, 그들의 맹목적 이동이 더러운 인간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깨끗한 인간들을 더럽게도 해준다는 사실, 건강한 인간들을 병들게 하고, 병든 인간들을 건강하게도 해준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전자들의 이동이 부와 권력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들의 이동을 강요하는 힘은 일차적으로는 물리적 힘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의 힘, 부의 힘이 웅크리고 있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표면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힘들, 전압으로서의 힘과 자본으로서의 힘의 일체화를 명약관화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한편 전자들의 이동이 저항을 받는 곳에서는 온갖 이름들이 온갖 색상으로 깜빡거리며 인간들의 눈동자를 현혹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은 자본의 힘, 부의 힘을 더욱 증폭하고 강화한다. 힘은 힘을 낳고, 그 힘으로 다시 힘을 북돋운다.

 더 많은 힘이 생산되고 이동되며 소모된다. 갈수록 힘의 전체량이 증가한다. 아, 이 힘은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다. 이제 이 맹목적인 힘, 자신의 강화만을 위해 자기에게 봉사하는 힘은 우리를 남김없이 파괴할 만큼 비대해졌다.

2008. 8. 24
粗髥散筆.

생각의 차이 또는 역사인식의 부재 斷想과 丹傷

나는 힘들게 해놓고 본전도 뽑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그에게 뿜어댔다. 그의 한 마디는 힘이 빠지게 했다. “잘 알겠지만, 나는 너와 생각이 달라.” 나는 나의 견해를 말한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의 현대사의 굴곡을 설명한 것에 불과했다. 그는 관점과 사실을 혼동하고 있었다. 그는 믿기 싫은 것은 완고하게 믿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교량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혹은 그러한 교량을 건설하기에, 나의 건축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나와 견해가 다르다고 말했지만, 그의 견해는 도무지 근거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그러한 근거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직 돈을 벌거나 여자 꼬실 생각만 할 것이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 이미 진 시합 속에서 분전하다가 남들처럼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설득하기는커녕 어떤 계기조차 줄 수 없으며, 결국 이 세상은 설득시킬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치부(致富)를 향한 경쟁 속에서 그렇게, 그렇게, 녹아 흘러버릴 것이다. 인간들의 의식은 그들의 배가 고프기 전에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혁명은 점점 불가능한 것이 되어갈 것이다.

2008. 8. 15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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