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추억을 천국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그것을 지옥으로 간주해 왔던가? 어째서 내게 과거는 결코 회귀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 잃어버린 무엇일 따름일까? 나는 왜 과거의 행복을 현재에, 혹은 미래에 구현해내려는 의지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의기소침하며, 쉽게 자포자기하는 것일까? 이러한 성격에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오랜 자조의식이 묻어있는 듯하다. 그러한 의식의 소이연은? 내가 모르는 모종의 억압이 유아기의 외상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환경의 불우함, 그리고 종교의 교리, 이런 것들이 그러한 외상에 우중충한 색깔을 덧칠했을 것이다. 해서, 지금의 나는, 내가 욕망하는 무엇인가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함으로써 억압하고 단념하는 것이다. 나는 부단히 욕망하지만, 부단히 포기해야만 부단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해서, 나는 기대치 않게 내게 주어졌던 모든 아름다운 지난날의 것들을 반추하고, 그것들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것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의 대체물로서, 나는 ‘학(學)’에 대한, 혹은 명성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을 하게 되었다. 나의 ‘학’은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될 만한 고상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우회적 표현이고, 욕망의 휘황찬란한 가면이며, 흉측한 화상(火傷)을 가리기 위한 오색의 천조각일 따름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의 외상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할 것인가? 혹은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 것인가? 나는 이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기억하자. 내가 내게서 발견하는 어떠한 덕목도, 사실은 온갖 지저분한 것들의 재활용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어떤 우월한 인간도 아니고, 어떤 숭고한 무언가를 배태하거나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저 나는 단지 하나의 독특한 삶을 구현하고 있을 뿐이요, 어느 누구의 삶도 그러한 구현이라는 면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2008. 9. 18
粗髥散筆.
- 2008/09/19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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