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 여자의 생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축하연에서 그 여자의 생일을 떠올렸다. 사실 며칠 전부터 오늘이 그 여자의 생일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질병이다. 몇 년째 어김없이 반복되었던 질병이다. 이 질병에 일말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다. 그 여자조차도, 아마, 내가 기억하는 그 여자의 생일에 대해, 혹은 그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는 나의 유별난 기억력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그 여자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간접적으로나마 그 여자에게 나의 생존여부를 피력한 것은 일 년여 만의 일이었다. 물론 그것조차도 그 여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일 터이다. 생일 축하연으로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한 쪽 구석에서, 청승맞게, 구차하게, 그 여자에게 메시지를 띄웠고 천금 같은 답신을 받고 안심했다. 그 여자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경계선 밖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있던 내게, 산발적으로 이따금씩 질문이 가해졌다. 연애경력에 대한 갑작스런 질문이 황당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하던 자리에서 공교롭게도 나는 그 여자의 생일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하마터면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을 뻔했다. 말하지 않았으니 잘했어. 위기를 그렇게 쓴웃음으로 넘겼다. 나의 연애는 당신들 마음대로 상상하시오. 나는 그 여자와, 그 앞의 여자와, 그 뒤의 여자를 당신들 앞에서 비속한 농담꺼리로 속화시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이 속화되지 않고서,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지탱해 나아갈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얼마나 속된 인간인가, 이 글이 웅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2008. 9. 17
粗髥散筆.
- 2008/09/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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