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두 번째 강의(1976. 1. 14)에 대한 정리와 단상들이다. 그의 언설은 어김없이 꼼꼼하고 신선하며, 우리 현실의 사회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양한 권력관계들은 사회 전체를 구성하고, 그것을 가로지르며, 그것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것들은 진실한 담론의 축적이나 순환 · 기능 없이는 자신을 수립하거나 상호 분리되거나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이의 담론들의 어떤 구성 없이는 권력의 행사란 없다. 그것은 모든 사회에서 진실이다.…우리는 권력에 의해 진실을 생산하도록 강요받는데, 권력은 자신의 기능을 위해 이 진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진실을 고백하거나 발견해야 한다. 권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조사하고 기록한다."p.42~43
진실(진리)은 추론되거나 직관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안되고 생산되는 것이다. 또한 초험적(transzendent)인 것이 아니라, 요청(postulat)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구미에 따라 진리를 요리해 왔고, 그들의 미각에 따라 진리의 맛을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간의 인류 사상사를 다양한 꼴로 수놓아 왔다. 나는 일전에 곽상(郭象)의 예를 든 바 있지만, 그것이 비단 곽상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겠는가?
"중세 이래로 사법적 사유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은 근본적으로 왕권 주변에서였다…왕권의 요구에 의해, 왕권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왕권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였다.…그 몇 세기 후에 이 사법적 구조물이 왕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왕권에 등을 돌리게 될 때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여전히 이 권력의 한계와 그 특권에 관한 문제였다."p.43~44
"주권의 문제야말로 그 주변에 법이론이 형성되는 중심적인 주요 문제이다. 서구사회에서 주권의 문제가 법의 중심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법의 담론과 기술(技術)이 기본적으로 권력 내부에서 지배 사실을 해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지배의 사실을 축소시키고 은폐하면서, 그들은 지배 대신에 주권의 합법적인 법과 복종의 법적인 의무라는 두 사실을 부각시키려 했다. 법의 체계는 전적으로 왕에게 집중되어 있다."p.44~45
"법체계와 사법의 영역은 다양한 형태의 예속의 테크닉과 지배관계를 실어나르는 영원한 운반수단이다."p.45

푸코는 사법 분석에 있어 몇 가지 방법적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래는 핵심어구들의 요약이다.
1. "권력의 끝으로부터, 마치 모세혈관처럼 가늘어진 그 끄트머리의 윤곽선에서부터 권력을 파악해야 한다."p.46
2. "권력을 의도나 결정의 차원에서 분석하지 말 것이다.…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가? 그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등의 질문…을 제기하지 말 것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권력의 의도가…효과적이고 실제적인 실행 속에 완전하게 투입되어 있는 측면에서 그 권력을 연구해보아야 한다."p.47
두 번째 방법적 주의를 설명하다가 푸코는 그 유명한 『리바이어던』의 속표지를 언급한다. 권력을 분석하기 위한 푸코의 방법은 군주의 머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민들로 이루어진 '주변적 육체들'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육체들을 가리켜 '권력의 효과에 의해 신하로 형성된 그 육체들'이라고 부언한다. 3. "권력을 전면적이고 동질적인 지배의 현상…으로 간주하지 말 것이다.…권력은 순환하는 어떤 것, 사슬처럼 기능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분석해야 한다…그것은 결코 여기 혹은 저기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부 사람들의 손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며, 부나 재화처럼 누군가에 의해 선점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권력은 작동한다. 권력은 망 속에서 기능하는데, 이 망 속에서는 개인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것에 당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이 권력을 행사하는 자세로 있다."p.48
4. "그러나…권력이 이 세상에서 가장 넓게,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체를 관통하는 권력의 민주적 · 무정부주의적 배급은 없다. 중요한 것은…권력에 대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의 분석을 해야 한다.…가장 낮은 곳에서 권력의 현상과 기술 ·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이 과정들이 어떻게 자리를 이동 확장하며 스스로를 변형시키는지, 그리고 특히 어떻게 이 과정들이 전체적 현상들에 의해 포위되고 병합되었는지, 또 더 일반적인 권력들이나 경제의 이윤들이 이와 같은 비교적 자율적이며 동시에 미세한 권력기술들의 작동 속으로 어떻게 미끄러져 들어갔는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49~50
푸코는 위의 네 번째 방법적 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예증하기 위해, '광기'와 '소아성욕'에 관해 서술한다. 16세기말에서 17세기에 이르러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어떤 목적으로 광기와 소아성욕이 배제되고 억압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단지 '광기'나 '소아성욕'이 '생산력의 형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소비들'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일까? 푸코는 달리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배제와 억압의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순간부터 부르주아지를 유리하게 만들어 주었던' 배제와 억압의 '기술과 과정', '권력의 미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도출될 수 있는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요인들은 일반적인 부르주아지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주변환경 · 가정 · 부모 · 의사 · 하급경찰 등에게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p.51
5. "섬세한 메커니즘 속에서 행사되는 권력은 교육이나 앎의 순환장치의 조직, 또는 그저 단순히 앎의 장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앎의 장치들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물도 아니고, 그것의 동반자도 아니다."p.51
권력의 가장 밑바닥을 구성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기술'이요, '장치'이다.
2008. 6. 25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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