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서양 근대의 기존 사상담론에서 중시한 세계를 향한 인식주체로서의 개인을 ‘세계이성’ 하에 종속시켜버림으로써, 근대의 코기토 철학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했다. 헤겔이 있음으로써, 인간은 더 이상 세계를 주도적으로 구성하고 해석하는 존재가 아닌, 세계에 의해 다져지고 조리되는 한낱 객체적 존재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인간의 양태를 다양하게 규정 지운다. 그리고 더 이상 인간은 인식하는 동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으로써 검증해야 하는 동물이 되었다. 데카르트 이래로 인간 이성의 찬가를 소리 높여 부르던 근대철학은, 절대정신으로서의 세계이성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세계를 율동하게 하는 동력으로서 인식이 차지했던 공간에 실천의 개념이 파고들 여지를 제공해야 했다.
만약 이러한 헤겔의 선행 작업이 없었다면, 맑스주의의 탄생은 과연 가능했을까? 과장을 다소 섞는 일이 용인된다면, 맑스주의는 헤겔의 ‘정신’을 ‘자본’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죽어가는 근대적 주체주의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는 결정적인 손놀림이었고, 또한 다른 한 편으로 개인의 존재론적 완성을 세계이성의 실현으로서의 국가라는 제도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칸트적 윤리를 소환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것이지만 말이다. 그것을 맑스가 아니면 어느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2008. 6. 11
粗髥散筆.
만약 이러한 헤겔의 선행 작업이 없었다면, 맑스주의의 탄생은 과연 가능했을까? 과장을 다소 섞는 일이 용인된다면, 맑스주의는 헤겔의 ‘정신’을 ‘자본’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죽어가는 근대적 주체주의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는 결정적인 손놀림이었고, 또한 다른 한 편으로 개인의 존재론적 완성을 세계이성의 실현으로서의 국가라는 제도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칸트적 윤리를 소환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것이지만 말이다. 그것을 맑스가 아니면 어느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2008. 6. 11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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