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기계 문제와 우리의 신체 苦讀과 孤獨

 대학원 세미나실에 홀로 앉아 이진경의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을 이어서 읽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른 어떤 요소와 결합하여 어떤 질료적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을 기계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면, 밥을 먹는 입은 수저(혹은 손)와 접속하여 음식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요, 피아노는 소리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이며, 자동차는 사람들의 이동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다.”p.128~131

 “따라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기계라는 고정성과 불변성, 항상성을 가정하는 물리학적 기계 개념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기계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관계론적 본질을 갖는 관계론적 개념이다.”p.137

 “기계는 이웃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만큼, 동일한 이웃관계를 갖는 한에서는 주어진 재료를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는 반복적 조건을 형성하지만, 그 이웃관계가 달라지면 아예 다른 기계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화하는 변환에 열려있다. 이런 양상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영토성’과 ‘탈영토화’, ‘재영토화’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p.137~140


  계열화된 구조물이라는 정의는 기계에 대한 존재론적 정의에 해당한다. 기계는 시공간적 계열화를 거쳐, 다시 말해 시공간적 특수성에 따라 그것의 용법과 의의를 달리한다. 그것의 기능은 연속성을 지닌 질료의 흐름에 대한 ‘절단’과 ‘채취’로 특징 지워진다. 그리고 그것의 목적은 질료의 보존, 통제, 배분, 생산, 육성에 있다. 

 푸코가 권력의 개념을 확장했듯이, 들뢰즈-가따리는 ‘기계’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 확장의 목표는 근대성 비판의 도마 위에 놓여 있다는 지평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권력은 기계를, 기계는 권력을 매개로 하여 기능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어떤 경우든 막연하게, 혹은 선험적으로 인간이라는 추상명사에 부합하는 그런 존재는 없다. 특정한 기계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특정한 기계를 통해 가공되는 ‘재료’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선험적 주체로 ‘인간’을 가정하고 그것이 부여하는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것은 대개 의미를 찾아내려는 사람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어떤 상(像)과 의미를 대상이 되는 공간에 투사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그것은 현재의 자기가 속한 인간의 이상을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인간으로 암암리에 승격시키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p.146

 코기토 철학의 전통 하에서의 주체, 현상학적 지평의 근간으로서의 지향성, 이것들이 폐기되고 있다. 그의 논거를 요약하면 인간은 공간-기계 속에 처한 역할행동으로서만 후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니체 이래의 현대유럽철학의 주류 분위기를 반영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경과학과 유전학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인간으로부터 ‘선험적인 그 무엇’을 전소시켜버릴 명분은 그 어디에도 충분히 드러나 있지 않다. 

 “공간의 문제, 공간-기계의 문제는 이전에 구성주의자들이 명확하게 선언했듯이 우리의 삶의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창출하는 것은, 혹은 새로운 종류의 미적 감각이나 기하학적 감각, 새로운 종류의 생활감각을 생산하는 것은, 공간-기계의 변혁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새로운 종류의 공간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하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혁명이라는 말에 충분히 값하지 못했다는 르페브르의 지적은 지극히 적절하다.…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드는 문제이며 공간-기계를 통해 조직되는 공간적 신체와 공간 내 신체를 변혁하는 문제이며, 이로써 새로운 공간-기계로 탈영토화 하는 문제이고, 새로운 감각, 새로운 집합적 신체를 형성하는 문제다.”p.168

 ‘공간적 신체’란 공간-기계화 된 신체, 도구화 된, 또는 숙련된 신체다. ‘공간 내 신체’란 공간-기계에 의해 ‘절단’, ‘채취’되는, 더 자세히 말하면 통제되고 육성되며, (재)생산되는 신체이다. 이진경은 신체를 ‘능동적 신체’와 ‘수동적 신체’라는 두 가지 양태로 구분하는데, 근대적 공간-기계 형성은 다분히 인간의 신체를 후자의 신체로 가둬두려는 의도 하에서 진행되었다. 혁명의 목적은 단순히 몇몇 권력자들의 처단이나 정치적인 구체제(Ancient Regime)의 전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편재된 구체제의 시공간적 아우라의 거미줄을 걷어내는데 있을 것이다.

2008. 6. 5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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