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이론은 비과학적인가? - 최재천에 대한 반론 苦讀과 孤獨

 도정일-최재천의 『대담』(휴머니스트)에서 프로이트에 관한 부분을 읽었다. 나는 이드(Id)가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최재천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프로이트 이론이 과학의 범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더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다. 그의 그러한 주장 속에 ‘과학 권력’의 타자 배제적 성격,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배제의 권력이 드러나는 듯하다. 기실 다위니즘 자체도 그것의 태생기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과학이 아닌, 다분히 관찰과 상상으로 버무려진 잡설에 지나지 않았던 것 아닌가? 게다가 현대의 생물(생태)학조차도 그것이 다위니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 늘 그것과는 정합하지 않는 무수한 경험적 사례들 속에서 곤혹스러워 하고 있지 않은가?

 “물봉선화를 건드리면 펑 하고 터지는 이유가 씨를 멀리 보내야 그놈도 살고 나도 살기 때문”이라는 최의 진화생물학적 주장과, “이드나 에고의 존재를 설정하는” 정신분석학적 주장 가운데 어떤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하기에 용이한 가설에 해당하는 것일까? 과학 신봉자인 최는 진정 식물에게도 종족 번식과 자기보존의 ‘의지’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혹은 증명했다고 믿는 것일까? 또한 이드나 에고의 존재가 신경과학의 계속되는 발전을 통해 언젠가는 밝혀질 수도 있는 것임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지동설조차도 고대 헬라스에서 최초로 제기되었던 당시에는 전혀 과학적 명제로서의 위상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천체관측의 수단의 발달에 기인해서만이 과학적 진리로서의 위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진화론 또한 DNA의 발견을 통해서 그 입김이 보다 강화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은 어떠한가? 과연 그의 평가대로 그것을 인문학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상상의 산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대번에 상상의 세계에서 가설을 끌어내고 출발한” 것이라는 최의 주장은 프로이트에 대한 그의 무지를 드러낸다. “기존에 있는 관찰에 바탕을 두고 거기에서 가설을 끌어내어 그 가설의 예측들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는”것이 그가 말하는 과학적 검증절차라고 한다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야말로 그가 말한 그러한 절차를 통해서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안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지만, 그가 정신분석학을 창안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은 브로이어(Josef Breuer)와의 몇몇 히스테리 환자들에 대한 임상실험을 통해서였다.(이 실험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히스테리 연구(Gesammelte Werke)』이다.) 또한 그는 거듭되는 사례관찰을 통해 숱한 가설들을 만들어냈고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기도 했지만, 대개 그는 신중한 탐색가였고 조심성 있는 연구자였다. 그는 자신이 정신분석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프로이트의 이론을 완정한 하나의 과학적 이론으로 간주하여 그것을 모든 정신질환 사례에 대입하려는 시도는 심히 우려할 만한 것일 수 있다. 오늘날 정신의학계에서도 프로이트의 이론은 숱하게 기워진 누더기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분명히 히스테리나 정신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다수의 임상적 효과를 입증해 왔기 때문에 현대 정신의학계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즉 그것이 단순히 '비과학'이라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무시해버릴 만한 오물은 아닌 것이다. 프로이트 이론의 맹신자들에 대한 최의 지적은 적절한 것일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대담에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해 퍼붓고 있는 그의 십자포화는 그 조준의 정확성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한편 도정일은 프로이트 이론의 성과를 단지 인문학 분야에 국한함으로써, 그것의 가치를 도리어 축소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인상이다. 도정일과 최재천,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이들 모두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점만을 드러내고 있다. 최는 그 무지로써 프로이트 이론의 비과학성만을 운운하고 있으며, 도는 그 무지 때문에 프로이트에 대한 최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도가 자조적으로 내뱉은 다음의 일구만이 그들 대화의 한계성을 솔직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프로이트가 무덤에서 들으면 “잘 논다, 나를 완전히 죽사발을 만드는군”이라고 할지도 몰라요.”

2008. 5. 7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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