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도의 비대상성과 금기 苦讀과 孤獨

 스터디가 취소되어 도서관에서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일부 읽었다. 제법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음 일구가 가장 눈에 띄어 적어둔다.

 
“고대의 성생활과 우리의 성생활 사이에서 가장 뚜렷한 구분은 의심할 바 없이, 고대인들은 본능 그 자체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 우리는 그 대상을 강조한다는 사실에 있다. 고대인들은 본능을 찬미했고, 그 본능을 위해 열등한 대상까지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인 행동 그 자체는 경멸하고 대상이 납득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그런 행동의 구실을 찾는다.”(p.38)

 자신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아동이나 동물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일은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인에게 있어서도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이것은 원시인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프로이트는 말하고 있다. 원시인들은 자신의 성충동을 해소하는데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자에 ‘문명에 의해 억압된 성충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성적 방종’과 ‘금기로부터의 해방’을 권장하는 디오니소스적 문화의식(文化儀式)―물론 이것은 아폴론적 절제와 균형의 보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에 찬사를 보냈던 청년기 니체의 문제의식과 관련해서도, 성에 대한 억압으로 일관했던 희랍 이후의 유럽문화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기가 어렵다. 

 성충동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연구결과들은 대개 그것을 ‘종족보존’과 연관시켜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성충동을 단지 종족보존의 측면에서만 다룰 경우, ‘유아기성욕(infantile sexuality)’이나 ‘동성애’, ‘페티시즘’, 그 밖의 성기가 아닌 다른 신체기관으로써 행해지는 성행위 등은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프로이트의 지적대로 “아주 다양한 환경에서,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개인들에게서 성 대상의 본질과 중요성은 둘째 문제이며, 성 본능에서 본질적이고 항구 불변인 것은 다른 어떤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성충동은 본래 수단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진실이 그러하다면, ‘종족번식과 보존’이라는 사회적, 문화적 대명제 하에서 이성(異性)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만이 널리 권장되었고, 그러한 관습이 강화되면서 그 밖의 유형의 성교는 사회적 금기로까지 발전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과 문명억압에 대한 니체와 프로이트의 담론을 바탕으로,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 소설가는 단연 스저춘이다. 그는 1930년대 상하이에서 활동하면서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을 다수 창작하였는데, 그의 여러 뛰어난 단편소설들 가운데서도 가장 나의 관심을 끌고 있는 작품은 『구마라습(鸠摩罗什)』이다. 스저춘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승 가운데 한 사람인 그를 종교와 에로스 사이에서 종생토록 갈등을 겪는 불우한 인물로 창작해 낸다. 그리고 스저춘은 '불에 타지 않고 남은 혀'를 통해 종교와 에로스 사이의 투쟁은 결국 에로스의 승리로 귀결되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 '혀'는 구마라습의 아내가 죽기 전, 그녀와 나눈 마지막 키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욕동의 상징물이었다. 그의 입멸과 화장의 잔해물로 남겨진 것이 사리(舍利)가 아닌 '혀'라는 사실은 프로이트와 사디즘에 영향을 받은 그의 창작 모티브를 잘 대변해준다. 

 항일전쟁기 루쉰(鲁迅)으로 대표되는 사회참여적 문인들에 의해 치명적인 비판을 받고 모더니즘 경향의 창작활동으로부터 아예 손을 떼버린 그가,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에도 공산당의 혹독한 탄압 하에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는 사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작가로서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는 사실, 그러한 사실들은 여전히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중국의 어두운 현실을 강변해주고 있다. 억압적 문명 하에서 지난 세기 내내 펼쳐졌고, 어쩌면 현재까지도 펼쳐지고 있는 동란의 세월, 그 한복판을 고되게 걸어 온 13억 인민들의 '신경증'을 상상해보라. 이들이 인류를 향해 뻗칠지 모를 그 무시무시한 신경증을 치유할 수 있는 양약(良藥)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자면, 그들에게는 잊혀진 자신들의 과거를 진지하게 되짚어 보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그 욕동을 창조적인 가치로 승화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2008. 4. 14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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