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에 나는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나 대화조차 없이 하루를 홀로 보냈다. 여섯 시간 째 장아이링(張愛玲)의 문학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읽으며 내일 있을 스터디의 발제를 준비하고 있다. 20대 중반의 그녀가 출간한 첫 소설집 서문에 실려 있다는 한 구절이 의미 깊게 다가온다. “아, 유명해질 것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너무 늦으면 즐거움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어서, 어서, 늦으면 안 돼, 안 돼.…개인은 기다릴 수 있지만, 시대는 기다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이다. 이미 파괴가 진행되고 있으며, 더 큰 파괴가 도래할 것이다. 어느 날 우리의 문명은 승화하든 하늘로 붕 떠버리든, 모두 과거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첨단을 향해 고단한 포복을 지속하고 있는 내 앞에, 주어진 땅바닥은 너무도 무르고 질퍽인다. 그녀 자신에 대한 호소가 사치로 여겨질 만큼 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은 너무도 절박하고 비참하다. 그녀의 ‘유명’이라는 말조차 내게는 한 유복한 젊은이의 한낱 철딱서니 없는 칭얼거림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관심사들이 쏟아져 나의 어깨와 척추를 압박하고 있고, 이 몸뚱이의 피로감과 현실의 물적-구조적 암울함은 건사하기조차 버거운 이 가엾은 열정을 그 단단한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서 쪼아 바스러트리고 있다. 제도권 학문이라는 육중한 괴물 앞에 서서 나는 모든 것이 마냥 두렵고 또 서럽다.
이러한 순간순간에, 내게 김훈의 이순신이 부여하는 의의는 유별나다. 면전에 펼쳐진 세계의 암담함과 비참함에도 아랑곳없이, 그러한 세계의 한 가운데를 대책 없이 뚫고 걸어가는 그의 두 건각(健脚)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거듭 자신의 무의미함을 내게 현시하고 있지만, 아, 나는 그저 무력하게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그 무력한 걸음걸음으로써만이 간신히 창조되어질 수 있을 터.
2008. 4. 1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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