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이여, 내 친구들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말년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의 변질과 왜곡은 이미 마르크스가 세상을 뜨기 전부터 그 조짐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탕아(蕩兒)는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신의 부모에게도 타인의 욕설이 미치게 한다. 그것은 설령 부모가 자기 자식이 타락의 갱도(坑道)를 헤매도록 가르치거나 방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자식의 방탕은 부모의 책임으로 일부 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김일성과 같은 인물들은 그야말로 마르크스의 탕아였다. 어찌 되었든 마르크스는 이들을 낳아 길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의 타락에 아주 약간의 책임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캘리니코스가 지적하는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의 타락을 마르크스 본인의 이론적 결함으로 온통 뒤집어씌우려는 부류들이 널려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탕아들의 못된 일거수일투족이 그 아비의 훈계의 산물인 것 마냥 떠들어댄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온당치 못하다. 서양 중세사에 숱하게 행해졌던 마녀사냥과 종교적 학살을 온전히 성서의 오류로 규정지울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의 이론 자체를 두고 판단해보자. 어떤 이들은 마르크스사상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많은 공산주의 이론들은 그러했다. 우리는 그러한 이론가들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고 있다. 푸리에나 생시몽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사회의 추동을 인간의 계몽으로부터 견인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상적이었다. 반면 마르크스는 ‘너무 현실적’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의 물질적 조건의 율동을 ‘분석’하는데 바쳤다. 그가 노동자들을 향해 ‘호소’했던 점은 물론 빠뜨릴 수는 없지만, 그의 사상에 있어 극히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자본론』을 통해 마르크스를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공산사회의 밑그림을 고안하는데 고심하는 마르크스가 아닌, 현실의 자본이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가를 집요할 정도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과학자’ 마르크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자본론』은 그 분량이나 치밀함 어느 측면에 있어서도, 마르크스 전후의 그 어떤 경제학자의 자본분석도 능가한다. 게다가 그의 분석은 자본주의의 수많은 맹점들을 날카롭게 도출해내고 있다. 그가 가장 많은 공을 들여 완성해놓은 것은 공산사회의 초도(草圖)이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정밀화(精密畵)였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그린 자본주의는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봉건적이고 목가적이었던 중세의 계층구조를 타파하였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로 이루어진 새로운 계급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통해 얻어진 잉여가치를 생산력의 향상을 위한 재투자로 활용함으로써 여타 자본가들, 또는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해야 하며, 그것이 그들의 생존의 조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기적인 경기침체는 필연적이다. 과도한 기술경쟁과 지속적인 산업의 발달은 잉여가치율의 상승과는 반대로 이윤율의 하락을 야기하고,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감소됨으로써 제품수요가 줄어들면 과잉생산이 촉발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로 이행되어질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공산사회가 저절로 도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황은 주기적으로 찾아오지만, 그것은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이 실업, 생활수준의 저하, 노동조건의 악화라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한, 자본주의 체제가 그것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제공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p.192) 노동자들이 사회 모순을 관찰할만한 시야를 갖고 있지 못하거나 사회 모순에 관대할 경우, 자본주의는 결코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는 ‘세계혁명’이 아니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지론이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험적으로 공산주의는 지배적 인민들의 ‘동시적인’ 행동으로서만 가능하며, 이는 생산력의 보편적 발전과 이들을 결합하는 세계적 상호 교류를 전제로 한다.” 또한 『공산주의의 원칙들』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은 결코 일국적인 혁명이 아니라, 모든 문명국들에서, 즉 적어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혁명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비록 한 나라가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접한 모든 반동국가들이 그 나라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국 사회주의’를 표방한 러시아의 스탈린 체제가 종국에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노동자들의 의식과 단결을 중요하게 여겼다. 제1인터내셔널은 그러한 필요성에서 구성되었으며, 마르크스는 그 속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민족운동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부 민족운동이 혁명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당시의 폴란드나 헝가리의 경우가 그러하였는데, 그는 러시아가 주창하는 범슬라브주의에 반대하여 이 두 나라의 독립을 지지하였다. 그 이유는 이 두 나라의 독립이 러시아 차르정부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당시의 영국, 미국,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에 대해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가 보통선거에 대한 효과를 지나치게 맹신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혁명정당의 건설’만이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소할 유일한 해답이라 여긴다. 이는 유일하게 그가 마르크스 자신의 주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부분이다.
2006. 3. 3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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