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 성찰 讀書후 甘想

『성찰』은 『방법서설』보다 더 깊고 치밀한 사고를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두 책의 핵심주제는 큰 차이가 없다. 먼저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고, 그 이후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자신의 신체를 포함하는 외부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례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성찰』은 『방법서설』을 출간함으로써 받게 된 신학자들을 비롯한 세인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당화하기 위해, 『방법서설』의 내용가운데 ‘라 플레슈’에서부터 시작된 자신의 학문적 탐험기는 빼버리고, 그가 방법적 회의가운데 도출해 낸 제일철학의 원리인 코기토(Cogito)와 그것으로부터 연역해 나가는 과정들을 보다 자세하고 심도 있게 설명하고 있다.

 램프레히트가 『서양철학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성찰』에서 엿보이는 데카르트의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탐험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농후한 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그의 힘겨웠을 사유과정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데카르트의 배려가 녹아있는 듯하다.  『성찰』의 내용상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맨 처음 ‘소르본 신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그는 그의 저작들에 대해 ‘비성경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신학자들에게, 자신의 이러한 철학적 기획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성서의 진리성을 무신론자들의 비아냥거림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 챕터인 ‘독자들을 위한 서언’에서는 그의 저작들에 대해 독자들이 가해온 철학적 비판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 두어 가지를 뽑아 이를 간단히 재반박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전체적인 요약이 나오고, 그 뒤에 본격적인 그의 사유과정이 여섯 성찰을 통해 전개된다. 

 그의 코기토 사유는 기왕의 모든 견해들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는 감각경험, 수학적 공리, 절대선으로서의 신, 이 모든 것들을 의심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의심하고 있는 나,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의심할 수 없이 명석, 판명한 것이다. 감각이 감각주체를 속이고, 수학적 공리가 기만적인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유주체로서의 나는 사유하고 있는 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코기토 주체로서의 나를 제일원리로 확정한 데카르트는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으로부터 ‘기만’의 가능성을 지워버리며, 무한속성인 신에게 ‘존재’라는 속성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속이지 않는 선한 신’을 통해 나 자신은 물론 외부의 모든 감각사물들의 존재가 증명된다. 

  그의 주장에 있어 후세 철학자들, 특히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와 같은 근대 합리론자들에게 가장 많은 비판대상이 되었던 부분은 제6성찰에서 주장되어진 ‘정신-육체의 이원적 구조’이다. 즉 정신과 육체가 각기 상이성을 지닌 실체로서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다음 몇 가지 점들에서도 오류를 드러낸다. 첫째, 데카르트가 ‘본유적’이라고 본 인간의 신 관념이 만일 동일한 신에 의해서 부여된 것이라면, 국가와 민족 간, 심지어는 인간 개개인들 간에 드러나는 신 관념의 편차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둘째, 데카르트의 신 관념이 육체로부터 분리된 순수정신으로부터 도출되었기 때문에 명석 판명한 것이라면, 순수정신에 대해서도 역시 명석판명한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육체로부터 분리된 순수정신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이며, 어떤 앎이 순수정신으로부터 도출된 앎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그에게 있어 여전히 불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의 사상사적 중요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신의 존엄함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 인간적인 것들은 모두 저열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중세적 사유를 초월하여, 인간의 사유가 모든 진리의 단서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인본주의의 화려한 부활을 철학적으로 완성시켰다. 이로써 그의 철학은 근대철학의 거의 모든 사상적 논의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2004. 2. 3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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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vndsn 2009/02/16 10:57 # 답글

    카테고리의 한자 제목들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데카르트의 思想史적 중요성'은 조염 님의 글을 배독하고 조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아니,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헌데 조염 님 본인께선 '코기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요하다면 어떻게 중요한가요?
  • 조염 2009/02/18 20:38 # 답글

    안녕하세요, 멋대로 만든 카테고리인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시니 민망합니다.

    데카르트의 중요성은, 세계를 '초월자/신의 의식'이 아닌 '인간 주체의 의식'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은 인간 주체의 가치를 신적 주체 '위에' 위치시킨 일종의 혁명적 선언입니다. 코기토 철학의 가치가 19세기 이후에 일종의 '탈 주체론적' 주장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비판된 바 있지만, 여하간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어 초월적 관점이 아닌 인간적 관점을 중시했다는 점은 사상사적 맥락에서 매우 의미있는 공헌입니다.
  • svndsn 2009/02/21 16:04 #

    덧글 란에 답글을 다셨군요. 그래서 지금껏 '업데이트알림'에 알림 표시가 없었나 봅니다.

    진지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사상사적'으론 '혁명적 선언'이라는 소문은 전혀 안 들어본 바는 아닙니다만..

    제가 <'사상사'vs.조염 님 본인의 생각>을 좀 더 강조해서 질문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덧글을 다는 일은 힘드네요. 딴지로 거는 걸로 오해 받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조염 2009/02/22 10:34 # 답글

    제가 위의 글을 쓴 것이 벌써 오 년 전 일이 되었는데, 그 동안 생각의 변화가 많이 있었습니다. 코기토 철학을 '혁명적 선언'이라 평하는 소문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저는 '코기토' 혹은 '동일한 주체'라는 것에 불신하고 있으며, 주체는 심하게 갈라져 있고, 다양한 색깔로 칠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니체를 비롯한 몇 몇 현대철학자들이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이해하는 방식과 유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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