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의 파격성에 비한다면, 그의 절친한 벗이었던 토머스 모어는 굉장히 온건적인 개혁가이다. 어떤 측면에서 모어는 당시의 정치/종교적 개혁의 분위기에 반하는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모어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유토피아(Utopia)는 그의 온건적 성향과는 거리가 먼 세계이다. 기실『유토피아』는 모어가 라파엘이라는 급진적인 개혁가로부터 한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경험담을 듣고, 그것을 거의 그대로 기술해놓은 책에 불과하고, 모어의 사견은 책 말미에 고작 몇 마디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몇 마디의 사견이라는 것도 유토피아에 대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십분 풍기고 있다. 흔히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유토피아는 모어의 상상물이 아니다.
유토피아를 몇 개의 단어로 개괄한다면, ‘공유제’, ‘유용성’, ‘합리성’과 같은 단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라파엘이 유토피아의 가장 주된 특징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유재산의 철폐, 공유제의 실현’이다. 라파엘은 “사유재산이 존속하고, 모든 것이 돈에 따라 판단되는 한 진정한 정의나 번영을 결코 실현시킬 수 없다(p.76)”고 말한다. 그러나 모어는 공유제가 노동에 대한 동기유발의 측면에서 취약성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라파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파엘의 말에 의하면 유토피아에는 유럽사회와 같이 일하지 않고 소비만 일삼는 귀족이나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극소수이다. 일단 유토피아에서는 학문적 소질이 있는 극히 소수의 학자들―여기에는 정치가, 성직자들도 포함된다―에게 노동을 면제하고, 그 이외에는 모든 사람이 남녀를 불문하고 노동에 참여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생산계층과 소비계층의 비율 면에서, 유토피아는 유럽보다 훨씬 안정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유토피아 인들은 한편 꾸밈이나 겉치레를 혐오하며,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유용성만을 꼽는다. 이는 공유제를 채택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치기준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상호경쟁을 통한 개개인의 잠재능력 발휘에 그 효율성의 원천이 있다면, 공산주의 체제는 극도의 유용성을 추구함으로써 무의미한 정신과 노동력의 낭비를 차단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인간 정신에 본래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미의 관념’을 가정할 때, 과연 인간이 모든 문명의 치장을 거부하고 극단적인 유용성만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의심해 볼 여지가 있을 듯하다. 사실 유용성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던 많은 공산주의체제 국가들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문명의 파괴를 낳고 만 예들을, 그리고 그러한 파괴들이 종국에 이르러는 체제모순의 한 사례로 전락해버리고 만다는 것을 역사적 반추를 통해 알 수 있다. 모어가 공산주의나 종교개혁을 찬동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러한 체제가 수 천 년 간 쌓아 오른 기존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 인들의 합리적인 성향은 ‘종교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이행되는 과도기인 르네상스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을 법하며, 이는 모어에게도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합리성이 도출해 낸 그 나라의 관습들은 대부분, 모어 시대의 유럽문명이 그간 축적해 온 관습들과는 판이한 것이고, 현재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낯선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그네들의 관습에 일일이 이의를 제기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유토피아에서는 결혼식의 신랑과 신부가 나체로 예식에 참여하는 관습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관습은 자못 미개한 것으로 보일 터이나, 옷이 서로의 육체적 결점을 가려 평생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녀 서로 간에 남기는 것을 경계하는 그들의 사려로는 오히려 자신들의 관습이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 말고도 그들의 합리적 관습은 내용 전체를 감싸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특징들 이외에도, 라파엘은 참으로 광범한 영역에 있어 유토피아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합리적이긴 하지만 행복관은 스토아적이기 보다는 에피쿠로스적이어서 정신적 쾌락을 중시하면서도 육적 쾌락을 지양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또한 신의 존재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존재와 지성의 미약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저마다의 정신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부여된 신의 관념을 숭배하지만, 자신의 신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종교적 관용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지만, 그들이 외세의 부당한 침해를 당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자신의 국가를 잃지 않기 위해 영악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싸운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U'(없다)와 'topos'(장소)가 결합되어 변형된 것이라 한다.(라파엘은 유토피아국의 창건자의 이름이 바로 유토포스(Utopos)라 하며, 유토피아라는 명칭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라파엘이라는 인물과 유토피아의 실재성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즉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하나의 그럴듯한 이론에 불과하며, 결국 지구상 어디에서도 실현될 수 없는 허황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역사는 라파엘이 묘사하고 있는 이상사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 인류는 자신들의 사회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모순들을―결코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그럭저럭 슬기롭게 해쳐 나아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 마냥 부질없는 공상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현실가와 공상가의 대립으로 인해 고인 물 마냥 썩어가기만 하지는 않으며, 그러한 대립은 줄곧 많은 혼란과 폭력을 야기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현실가와 공상가 양자가 심각하게 자신들의 과오를 되짚어 보도록 유도하여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양자 간의 변증법적 화해를 이끌어 내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2005. 3. 19
粗髥散筆.
태그 : 토마스모어



덧글
조동미 2009/06/02 21:31 # 삭제 답글
뭔 말인지 잘~모르겠어ㅋㅋ
조염 2009/06/02 22:34 #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