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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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31

따뜻한 기만 斷想과 丹傷

 인간은 누구나 과정 중의 존재일 뿐이라는 말은 하나 귀에 닿지 않는다. 나는 언제까지 나 자신을 '과정 중의 존재'라는 푹신한 침대 위에 눕혀놓을 것인가? 물론 내가 나 자신을 그러한 침대 위에서 일으켜 세운다 하더라도 과정 중의 존재라는 나 자신의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는 늘 과정 중에 있을 것이고, 또 과정 중에 있다는 말로써 나 자신을 지양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나 자신에 대한 자위기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껏 그래 왔었으므로 오히려 이제는 그 말을 반성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나는 인간이므로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명제에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주장들은 여전히 거칠고 불충분하며 더러는 낡아빠져 우습기까지하다. 틀릴 수 있다는 말은 나를 게으르게 만들고 자조적으로 만들며 나로부터 나온 어떤 것이든 수용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더욱 우스운 것은, 나의 못난 자존심, 자만심이 그러한 헛것들을 애지중지하게 만들고 온갖 미사여구로 그것들 속의 더러운 본질을 은폐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8. 10. 24
粗髥散筆.


결여된 인간들 斷想과 丹傷

나의 더러움을 차마 핥을 수 없는 벌레들이 하나 둘씩 몰려와 가느다란 더듬이를 갖다 댄다. 그것들이 싫지 않지만 종종 두려움을 느낀다. 잡으려 하면 오히려 달아나기 바쁜 그것들이 어찌 내 추한 몸뚱이 주위를 맴돌고, 살갗 위에 찜찜한 타액을 뱉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겁이 많은 나는 차마 그것들을 밟아 죽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어찌 대할까, 종잡을 수 없어 어지럽다. 아직도 내 귓바퀴 언저리엔 이미 古人이 된 J.R선생, I.K선생, K.M선생의 말이 웅웅거린다. 이제 나는 그들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진정 그들 자신의 제자였는지를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으며, 사실은 그들이 단지 떠버리에 불과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보면서 조소를 토해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제자임을 자처했던 수천, 수만의 벌레들 중 과연 누가 그들의 제자였단 말인가? 나는 그들을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거둔다. 아니, 내게 그들을 짓밟을 발바닥이 있었단 말인가? 이런, 나는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 본 적 없고, 제 발로 걸어본 적조차 없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냄새를 풍기는 벌레가 아니었던가?

2008. 10. 20
粗髥散筆.


1.
꽃잎이 흩어진다.
암술과 수술이 썩은 흙 위를 구른다.
지렁이 한 마리가 구멍을 파고
일개미들이 시체를 나른다.
이유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이 모든 것들이 한 데서 허우적거리며 숨져간다.

2.
운명,
추악하게 쪼그라든
노파의 얼굴.

2008. 10. 3
粗髥散筆.


공을기(孔乙己) 苦讀과 孤獨

 과거제는 사라졌다. 수십 년 공부는 허사였다. 삶이 나날이 비참해가고, 소흥(小興) 함형(咸亨)의 무르익는 술 향기가 달콤하다. 취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시대가 나를 저버렸다지만, 나는 나를 버릴 수가 없지 않은가? 나는 장삼을 벗지 못한 채, 단삼을 입은 이들처럼 서서 술을 마셨다. 나의 정체는 애매하고 모호했다. 나는 매일 애매모호한 나의 정체를 끌어안고 속으로 울었다. 이러한 나를 두고 아이들이 웃었고, 나의 속울음은 더욱 거셌다. 나를 버릴 수 없는 나의 입술에서 '공맹지도(孔孟之道)'가 튀어 나왔고, '가라사대'가 내뱉어졌다. 이것은 고약한 병증이었다. 나는 이 병증을 배신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수십 년을 애무해 온 나의 본질이었던 탓에. 세상이 증오하는 이런 나를, 나 스스로가 사랑하지 않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는 세상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뒤엎을 의지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었다. 단지 나는 자진할 기운이 없어 계속 살았을 뿐이다. 차라리 누군가가 내 죽음을 대신 살아줄 것을 바랬다. 그러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 삶보다 나은 죽음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서 결국은 꼭 삶 만큼 더러운 죽음, 그 뿐이었다.

2008. 9. 23
粗髥散筆.

과거라는 지옥 日常의 溢想

 어떤 이들은 추억을 천국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그것을 지옥으로 간주해 왔던가? 어째서 내게 과거는 결코 회귀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 잃어버린 무엇일 따름일까? 나는 왜 과거의 행복을 현재에, 혹은 미래에 구현해내려는 의지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왜 의기소침하며, 쉽게 자포자기하는 것일까? 이러한 성격에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오랜 자조의식이 묻어있는 듯하다. 그러한 의식의 소이연은? 내가 모르는 모종의 억압이 유아기의 외상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환경의 불우함, 그리고 종교의 교리, 이런 것들이 그러한 외상에 우중충한 색깔을 덧칠했을 것이다. 해서, 지금의 나는, 내가 욕망하는 무엇인가를,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함으로써 억압하고 단념하는 것이다. 나는 부단히 욕망하지만, 부단히 포기해야만 부단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해서, 나는 기대치 않게 내게 주어졌던 모든 아름다운 지난날의 것들을 반추하고, 그것들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것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의 대체물로서, 나는 ‘학(學)’에 대한, 혹은 명성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을 하게 되었다. 나의 ‘학’은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될 만한 고상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우회적 표현이고, 욕망의 휘황찬란한 가면이며, 흉측한 화상(火傷)을 가리기 위한 오색의 천조각일 따름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의 외상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할 것인가? 혹은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 것인가? 나는 이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기억하자. 내가 내게서 발견하는 어떠한 덕목도, 사실은 온갖 지저분한 것들의 재활용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어떤 우월한 인간도 아니고, 어떤 숭고한 무언가를 배태하거나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저 나는 단지 하나의 독특한 삶을 구현하고 있을 뿐이요, 어느 누구의 삶도 그러한 구현이라는 면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2008. 9. 18
粗髥散筆.


그 여자의 생일 日常의 溢想

 오늘 그 여자의 생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축하연에서 그 여자의 생일을 떠올렸다. 사실 며칠 전부터 오늘이 그 여자의 생일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질병이다. 몇 년째 어김없이 반복되었던 질병이다. 이 질병에 일말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다. 그 여자조차도, 아마, 내가 기억하는 그 여자의 생일에 대해, 혹은 그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는 나의 유별난 기억력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그 여자에게 메시지를 띄웠다. 간접적으로나마 그 여자에게 나의 생존여부를 피력한 것은 일 년여 만의 일이었다. 물론 그것조차도 그 여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일 터이다. 생일 축하연으로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한 쪽 구석에서, 청승맞게, 구차하게, 그 여자에게 메시지를 띄웠고 천금 같은 답신을 받고 안심했다. 그 여자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경계선 밖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있던 내게, 산발적으로 이따금씩 질문이 가해졌다. 연애경력에 대한 갑작스런 질문이 황당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하던 자리에서 공교롭게도 나는 그 여자의 생일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하마터면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을 뻔했다. 말하지 않았으니 잘했어. 위기를 그렇게 쓴웃음으로 넘겼다. 나의 연애는 당신들 마음대로 상상하시오. 나는 그 여자와, 그 앞의 여자와, 그 뒤의 여자를 당신들 앞에서 비속한 농담꺼리로 속화시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이 속화되지 않고서,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지탱해 나아갈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얼마나 속된 인간인가, 이 글이 웅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2008. 9. 17
粗髥散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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